
1868년 메이지 신정부 출범부터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서거할 때까지 44년을 메이지 시대라 부릅니다.
이 시기 일본에는 정치적으로 큰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쇄국으로 세계의 진보에서 뒤처져 있던 일본은 이 반세기 사이 서구를 본떠 입헌제를 도입하고 자본주의 기반을 확립하며 빠른 속도로 근대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열강의 하나로서 타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 역시 이때부터입니다. 또한 서양 문화의 유입으로 생활뿐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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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압박해 오던 가운데, 일본은 기존 방식을 바꾸고 서양의 제도·문화를 받아들여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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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가 바뀐 지 불과 7년 만에 우편 제도 도입, 철도 개통, 초등 교육 시작, 도미오카 제사장 가동, 자유민권운동 등 변화가 숨 가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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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새로운 가치관과 일본 고유의 것을 결합해 새로운 생활 스타일과 문화가 만들어졌다.
메이지 시대의 흐름
페리 내항

에도 시대까지 일본은 타국의 간섭을 막기 위해 ‘이국선 타격령’을 두고, 일본에 접근하는 외국 선박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쇄국’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1853년(가에이 6년) 미국 동인도 함대 제독 페리가 개국을 요구하며 4척의 함대로 돌연 우라가에 내항했습니다. 근대적이고 압도적인 서양의 군사력을 목격한 끝에, 1854년(가에이 7년) 에도 막부는 결국 개국을 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

페리 내항을 계기로 일본 국내에서는 외국을 격퇴·배제하려는 ‘양이파’와 ‘개국 추진파’가 대립했습니다.
여러 사건 끝에 ‘양이파’ 중에서도 천황에 충의를 다하는 ‘존왕양이’파가 1867년(게이오 3년) 에도 막부를 타도합니다.
교토 니조성에서 에도 막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하는 ‘대정봉환’을 시행했고, 1868년(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를 목표로 한 메이지 정부가 탄생해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에도라는 이름은 도쿄로 바뀌고, 연호도 메이지가 되었습니다. 막말부터 메이지 정부 탄생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메이지 유신’이라 부릅니다.
폐번치현

메이지 시대에 들어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정권 체제를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폐번치현’은 250년 이상 이어진 지방 통치 시스템 ‘번’을 폐지하고, 메이지 신정부가 새로 정한 ‘현’을 두는 정책입니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의 도쿠가와 쇼군과 주종 관계를 맺은 지방의 다이묘(번)가 영지와 영민을 지배했지만, 외국에 지지 않는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에 분산된 권력을 천황의 이름 아래 신정부로 모으는 중앙집권화가 필수였기에 이 정책이 추진됐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43개 도·도·부·현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가 계기가 됩니다.
부국강병 정책

개국 후 일본은 타국과의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했고, 서구와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다양한 제도에 착수했습니다.
메이지 정부 내에서 부국강병을 중심으로 이끈 인물은 ‘유신 삼걸’ 가운데 한 사람인 오쿠보 도시미치입니다.
메이지 정부에서 오쿠보 도시미치가 내세운 대표적 개혁은 ‘학제’ ‘세제’ ‘병제’ 3가지입니다.
학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학제였습니다. 나라의 힘을 키우려면 국가를 움직이는 국민의 학력을 높여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학제는 1872년에 공포되어, 신분·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제

국가 재정이 안정되지 않는 것 역시 당시 메이지 정부의 큰 고민이었습니다. 정책을 실행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당시 조세 제도는 농작물을 바치는 ‘연공’이 기본이라, 해마다 수확량에 따라 수입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세수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지조개정’을 제정해 수확량이 아니라 각 토지에 과세하기로 했습니다. 수확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 제도로 바뀌면서, 지조개정을 계기로 일정한 세금이 들어오게 되어 정부 재정은 안정되었습니다.
또한 지조개정으로 개인이 토지 소유자로 인정되고 매매도 가능해져, 토지 거래도 생기게 됩니다.
병제

당시 일본에는 제대로 군대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고, 보신 전쟁의 ‘관군(메이지 정부군)’도 각 번의 번사가 모여 있던 수준이었습니다.
정부는 국민에서 병사를 모으는 ‘징병령’을 공포합니다. 징병령에 따라 만 20세 이상 남성은 원칙적으로 3년간 병역에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민권운동

지조개정 등 중세로 소규모 농가는 생계를 잃었습니다. 반면 미쓰이·미쓰비시처럼 정부의 우대를 받은 정경유착 상인의 존재도 있어, 민중을 중심으로 많은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1874년 무렵부터, 정치에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다며 이타가키 다이스케를 중심으로 한 자유민권운동이 일어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서양의 사상으로 ‘천부인권’ 사상이 유행했습니다.
‘인간에게는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정부라 해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사상은 자유민권운동을 크게 뒷받침했습니다.
문명개화
정부의 근대화 정책으로 서구 문화가 활발히 유입되며 민중의 생활도 변해 갔습니다. 이를 문명개화라 부릅니다. 거리에는 벽돌 건물이 늘고, 도로에는 램프와 가스등이 켜져 마차가 달렸습니다. 인쇄 보급으로 신문이 발행되고,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이나 나카에 조민이 소개한 루소 사상 등 새로운 생각도 전해졌습니다. 복장과 음식 등 생활이 서구화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패션의 변화

상류층에서는 제복·예복으로 양복이 빠르게 퍼졌지만, 서민 사이에서는 이 무렵까지 기모노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다만 머리 모양은 메이지에 들어 크게 바뀌었습니다. ‘단발령’으로 촌마게를 자르는 것이 강제되면서, 남성은 오늘날처럼 서양식 단발이 된 것입니다.
식사의 변화

상류층을 중심으로 서양 요리를 먹는 일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메이지 시대였지만, 평소 집에서 먹는 것은 여전히 일본식 음식이 중심이었던 듯합니다.
그런 가운데 서민층에서 유행한 것이 ‘규나베(소고기 전골)’였습니다. 스키야키와 비슷한 요리로, 된장·간장·설탕 등을 사용한 일본식 간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전까지 불교 영향으로 동물 고기를 먹는 습관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무렵부터 서양식 다이닝 테이블을 본뜬 차부다이가 등장해, 가족이 같은 상을 둘러앉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생활용품의 변화

생활을 편리하게 한 아이템으로는 램프와 성냥이 이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에도 시대까지 사용하던 안돈(등잔)이나 초에 비해 석유 램프는 훨씬 밝았고, 긴자 등 번화가에는 길가에 가스등이 설치되어 거리를 환하게 비췄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예술
전통 미술과 서양 미술의 대립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서양 문화 유입으로 서구 스타일이 번성했지만, 국수주의의 대두와 맞물려 전통 미술의 가치도 재평가되며 전통 예술로의 회귀가 진행됩니다. 전통적·일본적인 미술과 서양 미술은 어느 쪽이 더 낫냐를 두고 대립했지만, 1907년 문부성 미술전람회가 설치되며 공존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두 스타일이 어우러진 메이지 시대 예술가들을 살펴봅시다.
다케우치 세이호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는 교토의 작은 요릿집에서 태어난 근대 일본화의 선구자입니다.
동물을 그리면 냄새까지 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털결이 느껴지는 생생하면서도 섬세한 화풍이 특징입니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을 여행한 경험이 있어 코끼리·사자 같은 서양 동물도 그렸고,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거장입니다.
시모무라 간잔
시모무라 간잔(下村観山)은 와카야마현 출신의 일본화가입니다.
간잔의 작품은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른 색을 떨어뜨려 종이 위에서 섞이게 하는 ‘타라시코미’ 기법, 여백을 살린 대담한 구도가 특징입니다. 또한 고래의 기법인, 선을 피하며 칠해 묘선을 살리는 채색법 ‘호리누리’, 윤곽선을 쓰지 않고 붓의 옆면으로 한 번에 그어 명암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쓰케타테’ 등도 함께 쓰인 것이 특징입니다.
전통 일본화 기술과, 기존 일본에는 없던 서양식 색채 감각을 융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가와이 교쿠도
가와이 교쿠도(川合玉堂)는 일본의 자연을 사랑하며 메이지부터 쇼와에 걸쳐 산과 강, 사계절 풍경을 그린 일본화가입니다. 근대적인 공간 구성과 기하학적 구도이면서도 수묵화 같은 스타일로 그린 자연미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풍경화뿐 아니라 하이쿠와 가집 등을 모아 가집도 만들었으며, 문화적 소양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스폿
약 200년 이어진 쇄국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화려한 서양 문화가 들어온 메이지 시대. 일본이 근대 국민국가로 성장하는 큰 계기가 된 시기였습니다.
그런 메이지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스폿을 소개합니다.
메이지 시대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 번 들러 보세요.
박물관 메이지무라
중요문화재 11건을 포함한 67동의 건축물, 교토 시전과 증기기관차, 메이지 시대 드레스를 입고 기념 촬영, 규나베를 먹을 수 있는 가게 등 당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 박물관입니다.
메이지노야카타
축음기를 일본에 전했다고 알려진 미국 무역상 F.W. 혼의 별장으로 지어진 석조 레스토랑입니다. 메이지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며 서양 요리의 명품을 맛볼 수 있습니다.
독립행정법인 조폐국(조폐박물관)
메이지 시대에 화력발전소로 지어진 건물로, 메이지 시대 벽돌 건축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당시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조폐박물관으로 개관했습니다. 화폐의 역사와 고전(古錢)을 비롯해 국내외 돈의 변천을 배울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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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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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미국의 페리가 이끈 흑선이 내항해 개항장이 된 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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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조슈 동맹을 중재하고 대정봉환으로 이끌어, 근대 일본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카모토 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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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번치현에 의한 중앙집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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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정부의 부국강병·식산흥업 정책에서 탄생한 도미오카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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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교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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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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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공포된 징병령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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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권운동의 중심 인물 이타가키 다이스케 동상과 고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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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금지된 ‘촌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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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이전 식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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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부터 보급된 성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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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활 스타일의 기반이 다져진 변화의 메이지 시대
연혁
- 1853년
- 페리 내항
- 1867년
- 대정봉환
- 1868년
- 메이지 유신, 오개조의 어서문(도바·후시미 전투, 에도성 개성)
- 1868년
- 메이지 정부 탄생
- 1869년
- 판적봉환
- 1870년
- 인력거 발명
- 1871년
- 폐번치현
- 1873년
- 징병령, 지조개정
- 1875년
- 러시아와 지시마·가라후토 교환
- 1876년
- 해군병학교 설치
- 1877년
- 서남전쟁. 사이고 다카모리 자살
- 1881년
- 국회 개설의 조. 자유당 성립
- 1882년
- 입헌개진당과 일본은행 설립
- 1884년
- 갑신정변
- 1885년
- 내각제도 실시
- 1886년
- 제국대학(도쿄대학) 창립. 초등학교령·중학교령 공포
- 1888년
- 시제·정촌제 공포
- 1889년
- 대일본제국헌법 공포. 황실전범 공포
- 1894년
- 청일전쟁
- 1895년
- 시모노세키 조약 조인, 삼국간섭
- 1897년
- 화폐법 공포, 금본위제 확립
- 1899년
- 개정 신조약 실시 관련 조서
- 1900년
- 북청사변
- 1901년
- 일본적십자사 조례 공포
- 1902년
- 영일동맹 성립
- 1903년
-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제도 공포
- 1904년
- 러일전쟁 시작
- 1905년
- 포츠머스 조약 조인
- 1910년
- 대역사건, 한일병합
- 1912년
- 국제분쟁 평화적 처리 조약 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