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기 변동과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난 변화의 시대

갱신일 :

1912년 7월 30일부터 1926년 12월 25일까지의 15년을 다이쇼 시대라고 한다.
다이쇼 시대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보통선거가 실현되며, 여론이 정부를 움직이는 시대가 찾아왔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본은 열강의 일원이 되었고, 국제연맹에서는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전쟁 특수에서 전후 공황으로, 그리고 관동대지진에서는 사망·실종자가 약 10만5천 명에 달해 일본 자연재해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됐다.
불과 15년이지만 큰 변화가 연이어 일어난 변혁의 시대, 다이쇼 시대를 되짚어보자.

포인트

  • 다이쇼 데모크라시 운동이 일어나며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시작
  •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간토 지역을 덮친 ‘관동대지진’
  • 일본과 서양이 어우러진 독특한 세계관 ‘다이쇼 로망’

다이쇼 시대의 흐름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짧은 15년이지만, 오늘날 일본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다.
다이쇼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보며, 지금의 일본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생각해보면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제1차 세계대전 이미지
제1차 세계대전 이미지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영·프·러의 삼국협상과 독·이·오스트리아의 삼국동맹은 유럽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일본도 영일동맹을 이유로 참전해 독일과 전쟁에 들어갔다.

이 시기 일본은 중국 정부에 21개조 요구를 내밀고, 러시아 혁명을 방해한다는 명분으로 영국·미국·프랑스와 함께 시베리아 출병을 하는 등 중국 대륙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쟁 특수에서 전후 공황으로

관동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도시 이미지
관동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도시 이미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던 일본은 해외 수출이 늘며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이 호황은 훗날 ‘전쟁 특수’로 불린다.
하지만 호황에는 반동이 따랐고, ‘전후 공황’이라 불리는 불황이 찾아왔다.
국내에서는 물자 부족으로 물가 상승이 이어져 생활이 팍팍해졌고, 전국적으로 쌀 소동이 일어났다.

또한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해 장기 불황에 빠졌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반성하며 국제 평화 유지를 목표로 한 국제연맹이 1920년에 발족했고, 일본은 발족 당시 상임이사국이 됐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로의 변화

1925년 성립한 보통선거 이미지
1925년 성립한 보통선거 이미지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부터 민주주의·자유주의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넓힌 것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운동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란 다양한 자유주의·민주주의적 운동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싹튼 계기로 높게 평가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정치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로 확산됐다.
‘여성 해방 운동’ ‘부라쿠 차별 해방 운동’ ‘보통선거 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이 일어나며 사회의 모습이 바뀌어 갔다.

1925년 ‘보통선거’가 성립해 만 25세 이상 모든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고, 이를 통해 국정을 움직이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기반이 마련됐다.

다이쇼 로망이란

다이쇼 시대에 유행한 미인화 이미지
다이쇼 시대에 유행한 미인화 이미지

다이쇼 로망은 일본 전통과 서구의 모던한 문화·사상이 어우러진, 다이쇼 특유의 문화를 말한다.
다이쇼 로망의 시작은 ‘동양 제일의 항구’로 불리던 고베항으로 보기도 하며, 최신 서구 문화를 위성도시의 부유층이 받아들이면서 모던한 예술·문화·생활양식이 퍼졌다고 한다.
다이쇼 로망의 특징은 예술과 건축, 패션에서 두드러진다.

다이쇼 시대의 예술

다이쇼 시대의 예술가들도 서양 문화를 각자의 작품에 받아들였다.

다이쇼 로망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다.
서정적인 터치로 그린 미인화는 많은 잡지와 악보집 표지를 장식했다.
다케히사 유메지는 그림뿐 아니라 시와 동요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일본 모던 아트의 선구라고 할 만하다.

일본화 분야에서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여성’의 모습이 많이 그려졌다.
대표작으로는 ‘요염함’을 그린 가이노쇼 다다오토(甲斐庄楠音)의 ‘요코구시(横櫛)’가 있다.
주제는 인물, 그중에서도 여성이 대부분이며 풍경화는 매우 드물다.
다이쇼 말기의 어두운 분위기를 상징하는 데카당스 화가의 대표로 꼽힌다.

화가 요로즈 테쓰고로(萬鐵五郎)도 다이쇼 시대 일본에서 특히 독보적인 재능을 빛냈다.
이와테현 와가군 도와정(현재의 하나마키시) 출신으로, 일본 서양화계에 당시 전위미술이던 야수파를 도입한 선구자로서 그의 공적은 크다.

다이쇼 시대의 건물

다이쇼 시대의 건물은 일본과 서양이 섞여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관공서·학교·도쿄역 같은 공공 건물에는 서양식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
일반 주택에서는 일본식 건축에 서양식 건구나 가구를 조합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다이쇼 중기에는 서양식 생활을 도입한 ‘문화주택’이 일반 주택으로 많이 건설됐다.

다이쇼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로는 도쿄역·구 제국호텔·구 아사쿠라가 주택이 꼽힌다.
도쿄역은 건축가 다쓰노 긴고가 설계해 다이쇼 3년(1914)에 준공됐다.
구 제국호텔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했으며, 뵤도인 봉황당을 모티프로 지어졌다. 다만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듯한 거대한 호텔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구 아사쿠라가 주택은 한때 시부야구 의장과 도쿄부 의회 의장을 역임한 아사쿠라 도라지로의 저택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현존하는 다이쇼 시대의 건물을 둘러보며 다이쇼 로망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다이쇼 시대의 패션

다이쇼 시대의 패션도 화양절충이 특징이었다.
서양식 옷을 받아들인 스타일이나 새로운 패션을 당시에는 ‘하이카라’라고 불렀다.
남성은 수트·셔츠·넥타이에 둥근 안경이나 중절모 같은 차림이, 여성은 기모노에 부츠를 매치한 패션이 유행했다.

‘하이카라’가 유행하면서 ‘반카라’ 패션도 퍼졌다.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패션을 부정하듯, 스탠드칼라 셔츠에 하카마와 기모노, 학생모에 게타를 신는 투박한 스타일이 ‘더·반카라’ 스타일이었다.

돌아보면 놀라운 다이쇼 시대의 상식

다이쇼 시대 식탁 이미지
다이쇼 시대 식탁 이미지

문명개화 이후의 큰 변화 속을 살았던 다이쇼 시대의 서민 생활에는 현대와 다른 상식과 가치관이 많았다. 당시의 상식을 되짚으며,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상해보자.

테이블이 아닌 각자 상에서 식사

차부다이도 꽤 보급돼 있었지만, 다이쇼 시대 초반에는 각자 상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많았던 듯하다.
서민들 사이에서 유용했던 것이 ‘하코젠’으로, 도시락처럼 생긴 상자에 그릇과 젓가락 등을 넣어두고 식사 때는 뚜껑을 뒤집어 상처럼 사용해 그 위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다이쇼 시대가 흐르면서 개인 상보다 차부다이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소통은 뒷골목에서

집안일 중에서도 물을 많이 쓰는 빨래는 공동 우물 주변에서 이뤄졌다.
당시 주부들은 빨래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여러 정보를 교환했다.
지금도 주부들의 가벼운 정보 교환을 ‘이도바타(우물가) 회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원래 의미의 ‘이도바타 회의’다.
우물뿐 아니라 뒷골목도 우물과 비슷하게 소통의 장소 역할을 했다.
오늘날처럼 카페 같은 정돈된 공간에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곳에서 소통했다는 점에서도 현대보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더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초봉이 50엔?

다이쇼 말기 대졸 직장인의 초봉은 50~60엔이었다.
또한 직업여성의 평균 월급은 타이피스트 40엔, 전화 교환원 35엔, 사무원 30엔이었다.
택시 운행은 다이쇼 시대에 시작됐는데, 기본요금은 60센이었다.
다이쇼 시대의 화폐 가치는 현재의 3만 엔이 당시 10엔에 해당한다.
그렇게 보면 다이쇼 말기 대졸 직장인의 초봉은 15만~18만 엔 정도였던 셈이다.

다이쇼 시대를 느낄 수 있는 관광 명소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건물과 관광 명소를 소개한다.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를

1914년 12월에 개업한 일본의 관문, 도쿄역.
당시 고베까지 전 구간이 개통된 국철 도카이도 본선의 시발역 신바시역과, 북쪽 관문인 일본철도의 우에노역을 잇는 중앙정차장으로 개업했다. 설계는 메이지·다이쇼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다쓰노 긴고가 맡았다. 지상 3층 규모로 남북으로 뻗은 철골 벽돌조 건물의 길이는 약 335m.

긴잔 온천

다이쇼 로망이 감도는 온천 거리.
에도 시대에 번성했던 노베사와 은광의 채굴과 함께 역사를 이어온 온천지다.
폐광 이후에는 요양 온천지로 붐볐지만, 다이쇼 2년(1913)의 대홍수로 온천 마을이 괴멸했다.
이후 지역 재계의 협력으로 쇼와 초기 무렵에는 서양풍 목조 다층 건축물이 긴잔가와 양안에 늘어선, 지금과 비슷한 경관까지 복구됐다.

오사카시 중앙공회당

나카노시마에 있는 집회 시설. 주식 중개인이었던 오사카 시민 이와모토 에이노스케의 기부로 1918년에 완성됐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바로크 요소를 더한 우아한 붉은 벽돌 건물은 나카노시마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다이쇼 시대의 건물 이미지

    다이쇼 시대의 건물 이미지

  • 제1차 세계대전 이미지

    제1차 세계대전 이미지

  • 관동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도시 이미지

    관동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도시 이미지

  • 1925년 성립한 보통선거 이미지

    1925년 성립한 보통선거 이미지

  • 다이쇼 시대에 유행한 미인화 이미지

    다이쇼 시대에 유행한 미인화 이미지

  • 다이쇼 시대 식탁 이미지

    다이쇼 시대 식탁 이미지

연혁

1912년
메이지 천황 붕어·다이쇼로 개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일본은 영일동맹을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수출이 늘며 전쟁 특수로 이어짐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923년
관동대지진
1925년
보통선거법 공포(선거권은 25세 이상 남성)
1926년
다이쇼 천황 붕어·쇼와로 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