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고노스케

전기 제조업체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현재는 파나소닉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 경영자 가운데서도 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점원 수습으로 일하던 가난한 소년 시절부터, 어떻게 ‘경영의 신’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그 생애를 업적과 명언과 함께 소개한다.

포인트

  •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와 그룹 회사를 한 세대에 일궈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다양한 가전제품을 개발·제조해 일본에 가전을 보급했다.
  • 일본에서 처음으로 주5일(주휴 2일) 근무제를 회사에 도입했다.
  • 윤리 교육과 출판 활동을 위해 PHP연구소를 설립하고, 정치인 양성을 위해 마쓰시타 정경숙을 창설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열정을 쏟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업적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를 한 세대에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소개한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그가 남긴 업적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 알고 싶다면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일본에 가전을 널리 퍼뜨리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 보급한 가전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 보급한 가전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まつした こうのすけ)는 ‘생산자는 세상에 물자를 넉넉히 채워 불편을 없애는 것이 사명’이라는 수도 철학을 바탕으로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세우고 경영했다.
제작소에서는 전구 소켓을 시작으로 자전거용 램프, 전기다리미, 건전지 등 다양한 가전을 개발·제조했다.
그 결과 당시 일본에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가전이 전국으로 퍼졌다.

일본 최초로 주5일(주휴 2일) 근무제를 도입

주5일(주휴 2일) 근무제 도입 후 달력의 이미지
주5일(주휴 2일) 근무제 도입 후 달력의 이미지

지금은 당연해진 주5일(주휴 2일) 근무제.
하지만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마쓰시타 전기산업을 경영하던 1960년대에는 주휴 1일이 일반적이었다.
그 시기에 회사에 주5일 근무제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 마쓰시타 고노스케다.

도입 목적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가올 국제 경쟁에서 이기려면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효율을 높이면 지금보다 심신의 피로가 쌓인다.
그 피로 회복을 위해서는 하루 더 휴식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이틀 모두 쉬기보다 “휴일 하루는 휴식을 위해, 다른 하루는 교양을 위해 쓰라”고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주5일 근무제의 목표가 어디까지나 업무 효율 향상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기준법에서 주휴 2일이 정해지기 전부터 이를 회사에 도입한 점에서, 그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약력

서기 일어난 일
1894년 와카야마현 가이소군 와사촌에서 소지주 자산가의 아들로 태어남
1904년 가계를 돕기 위해 화로 가게에서 점원 수습을 시작
1905년 일하던 화로 가게가 폐업해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게 됨
1910년 오사카 전등(大阪電灯)에 견습공으로 입사
1918년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 창업
1922년 사업 확대로 제1 본점과 공장을 건설
1933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업부제를 실시
1935년 자사 제품 수출을 위해 마쓰시타 전기 무역 주식회사를 설립
1936년 국산 전구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내셔널 전구 주식회사를 설립
1946년 번영을 통한 평화와 행복 실현을 위해 PHP연구소를 창설
1965년 일본 최초로 주휴 2일(주5일 근무) 제도를 도입
1973년 회장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취임
1980년 21세기를 이끌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마쓰시타 정경숙을 설립
1989년 94년의 생애를 마침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생애

가계를 돕기 위해 점원 수습을 하던 소년은 어떻게 미래를 개척해 성공했을까.
그의 생애를 되짚어 보자.

점원 수습으로 사회인의 예절을 몸에 익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점원 수습을 했던 자전거 가게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점원 수습을 했던 자전거 가게의 이미지

1894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난 마쓰시타 고노스케.
아버지가 소규모 지주였기에 비교적 넉넉한 집에서 자랐지만, 쌀 시세에 실패해 빚을 지며 마쓰시타 가문은 파산했다.
가족은 함께 와카야마시로 이사해 게타 가게를 시작했으나 운영이 어려워졌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초등학교 4학년에 중퇴하고, 가계를 돕기 위해 화로 가게로 점원 수습을 나갔다.
하지만 그 가게가 3개월 만에 문을 닫아 자전거 가게로 옮긴다.
자전거 가게에서 그는 인사하는 법부터 용모·말투·예절 등 사회인으로서의 매너를 철저히 배웠다.

전기 사업의 성장을 확신하고 진로를 정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기 사업의 미래를 본 전기철도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기 사업의 미래를 본 전기철도의 이미지

점원 수습을 시작한 지 5년 뒤, 전기철도 노선이 깔리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전기 사업이 성장할 것’이라 생각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현재의 간사이 전력 ‘오사카 전등(大阪電灯)’에 입사했다.
우수한 인재로 순조롭게 승진했지만, 자신이 개선한 소켓이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쉬움, 허약한 몸, 결혼으로 인한 장래 불안이 겹치며 ‘미래 방침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 고민 속에서 아버지의 “실업으로 자립하라”는 말을 계기로 독립을 결심한다.
당시엔 위험해 전문가만 할 수 있던 전구 탈착을 누구나 할 수 있게 하는 전구 소켓을 개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단칸 셋방의 좁은 공간에서 시작된 도전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사업을 시작한 좁은 아파트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사업을 시작한 좁은 아파트의 이미지

적은 자금으로 독립해 돈이 부족했고, 기계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장과 사무실도 빌릴 수 없어 살고 있던 셋집 공간을 작업장으로 썼다.
다만 훗날 ‘산요전기’ 창업자가 되는 처남을 불러들이고, ‘오사카 전등’ 시절 동료들과 함께하는 등 사람 복은 있었다.

힘들게 개발한 소켓도 팔리지 않던 밑바닥 시절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고생해 개발한 전기기기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고생해 개발한 전기기기의 이미지

개발한 소켓의 구리에 필요한 연물 제조법 지식이 없어, 연물 공장 원료 조각을 주워 연구하거나 옛 동료에게 배우며 실험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소켓을 완성했다.
하지만 어렵게 만든 소켓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런 실의 속에 선풍기에 필요한 ‘전기가 통하지 않는 판’의 대량 주문이 들어온다.
주문이 계속되며 자금 사정도 안정됐다.
자금이 안정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전기기구 개발을 본격화하고자 사무실을 빌려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창립했다.
창립 후 개발한 어태치먼트 플러그는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아 잘 팔렸다.
이어 고안한 2등용 꽂이 플러그도 히트하며 제작소의 평판이 높아졌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그룹 회사를 설립

성장해 가는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이미지
성장해 가는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이미지

해마다 평판과 매출이 오르며, 처음 빌린 사무실이 비좁아졌다.
사업 확장을 위해 오사카시에 본사와 공장을 건설한다.
이후에도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 대리점 제도 도입 등 다양한 시도로 회사를 키워 갔다.
단순히 매출만 올린 것이 아니라 경영 혁신에도 힘써 사업부제를 도입하는 등 생산성 향상에도 나섰다.
그리고 경영 혁신의 일환으로 1935년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분사제를 도입해 사업 부문별로 9개 자회사를 산하에 세우며 그룹 회사 체계를 갖췄다.

일본군의 요청으로 군수품을 생산

전시 중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가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목조선의 이미지
전시 중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가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목조선의 이미지

순조롭게 성장하던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상황이 달라진다.
국책으로 모든 산업 활동이 군수 생산에 동원되면서, 일본군은 회사에 군수품 생산을 요청했다.
항공기용 무선기, 휴대 무선기, 레이더 등 전자기기 생산에서 시작해, 종전 직전에는 목조선과 목제 비행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난다.
이를 계기로 민수품 생산으로 복귀하지만, GHQ의 방침과 지시에 따른 제한으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어려움에 놓이게 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해임 위기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GHQ의 수장·맥아더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GHQ의 수장·맥아더

종전 후 GHQ의 제한령으로 회사 자산 동결, 재벌 가족 지정 등 여러 제약을 받으며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는 해산 위기에 처한다.
또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공직 추방 처분을 받아 퇴진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회사 직원과 거래처, 대리점·판매점의 제외 탄원 운동으로 공직 추방 처분을 면했다.

회사를 재건하고, 일선에서 물러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제신으로 모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사가 있는 쓰바키오카미야시로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제신으로 모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사가 있는 쓰바키오카미야시로

위기를 넘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다양한 개발과 경영 혁신으로 회사를 다시 세우고 성장시켰다.
만 65세가 된 1961년 회장에 취임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80세를 계기로 은퇴해 고문이 된다.
은퇴 후에는 70억 엔에 달하는 사재를 들여 재단법인 마쓰시타 정경숙을 설립하고 정치인 양성으로 정계에 기여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94세가 된 1989년 병으로 생애를 마감했다.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와 그룹 회사를 한 세대에 일군 그는, 쓰바키 대사의 마쓰시타 고노스케사에서 제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저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경영과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생각을 책으로 남겼다.
수많은 저서 가운데 특히 유명한 2권을 소개한다.

《길을 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자신의 체험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쓴 짧은 수상집.
40년 넘게 읽히며 많은 사람이 인생 책으로 꼽는 베스트셀러다.

《솔직한 마음이 되기 위해》

“서로 탓하고 비난하며 어두운 마음으로 살기보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 용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자”는 생각으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쓴 책.
서로 격려하며 살기 위해서는 ‘솔직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 마음을 기르고 높이는 방법을 담은 명저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명언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남긴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명언을 소개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것 외에도 명언이 많으니 꼭 찾아보길 바란다.
지금의 나에게 꽂히는 말이 분명 있을 것이다.

  •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걱정해도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뜻을 세우는 데에는 늙고 젊음이 없다. 그리고 뜻이 있는 곳에는 늙고 젊음과 상관없이 길은 반드시 열린다.
  • 장사란 감동을 주는 것이다.
  • 만사는 다 썼다고 생각하지 마라. 스스로 절벽 끝에 서라. 그때 비로소 새로운 바람은 반드시 분다.
  • 아무리 열심히라도 쓸데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쓸데없는지 아닌지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세요. 이것이 쓸데없는 일인지 하나하나 검토하세요. 반드시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일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왜 성공했을까.
그의 인품, 사물을 보는 방식, 사고법을 이해하는 힌트가 될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담배 심부름으로 잔돈을 모았다고?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종종 담배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했다.
20개를 한꺼번에 사면 1개를 덤으로 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묶음 구매로 심부름 횟수를 줄이고 담배 1개 값만큼 절약할 수 있다는 데에 눈을 뜬다.
그는 담배 1개 분으로 아낀 돈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아 잔돈을 모았다.
낭비를 줄이고 지출을 아끼는 비즈니스의 중요한 사고와 행동을, 어린 시절부터 실천했다는 점이 놀랍다.

획기적인 홍보 방식과 마쓰시타 고노스케식 설득

‘내셔널 램프’라는 자전거 램프를 개발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매장에서 1만 개를 무료로 배포해 인지도를 높이는 당시엔 아무도 하지 않던 홍보를 실행했다.
하지만 무료 배포용 램프에 넣을 건전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건전지 공급처 사장을 찾아가 “건전지 1만 개를 무료로 주세요”라고 부탁했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라 거절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내셔널 램프는 좋은 제품이니 1만 개를 무료로 뿌리면 많은 사람이 알게 되어 반드시 팔린다. 그러면 건전지도 함께 팔리게 된다”라고 설득했다.

무료 배포를 시작하자 1,000개 정도를 뿌렸을 무렵부터 주문이 잇따랐고, 연말까지 들여온 건전지는 공급처 사장과 약속한 수량의 2배를 넘겼다.
아무도 하지 않던 홍보를 떠올린 것도 대단하지만, 이를 위해 무리한 조건까지 설득해낸 점에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역시 남다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인연 있는 건물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개발해 온 역대 제품과 그의 말을 통해, 어떤 인물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시설을 소개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더 알고 싶다면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파나소닉 뮤지엄

종합 전기 제조업체 파나소닉이 창업 100주년 기념 해에 리뉴얼한 기업 뮤지엄으로, 부지 안은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사관’·‘모노즈쿠리 이즘관’·‘사쿠라 광장’으로 구성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사관’은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94년 인생을 되짚는 체험을 테마로 한 시설이다.

다실 홍쇼안(紅松庵)

기슈 도쿠가와가의 한 분파이자 기슈 도쿠가와가의 시조인 도쿠가와 요리노부가 와카야마성 니시노마루에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니시노마루 정원. ‘모미지다니(紅葉渓)’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이 정원에 서 있는, 목조에 동판 지붕을 얹은 스키야즈쿠리 다실이 홍쇼안(こうしょうあん)이다. 1973년에 진행된 정원 정비를 기념해, 명예 시민인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기증했으며 ‘모미지다니’의 ‘홍(紅)’과 마쓰시타의 ‘송(松)’을 따 이름을 지었다.
다실에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리ュ레이세키’가 있어, 다도 예절을 몰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말차와 화과자를 즐길 수 있다.

사진

  •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지에 있는 비석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지에 있는 비석

  •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 보급한 가전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에 보급한 가전의 이미지

  • 주5일(주휴 2일) 근무제 도입 후 달력의 이미지

    주5일(주휴 2일) 근무제 도입 후 달력의 이미지

  •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점원 수습을 했던 자전거 가게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점원 수습을 했던 자전거 가게의 이미지

  •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기 사업의 미래를 본 전기철도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전기 사업의 미래를 본 전기철도의 이미지

  •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사업을 시작한 좁은 아파트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사업을 시작한 좁은 아파트의 이미지

  •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고생해 개발한 전기기기의 이미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고생해 개발한 전기기기의 이미지

  • 성장해 가는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이미지

    성장해 가는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이미지

  • 전시 중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가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목조선의 이미지

    전시 중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가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목조선의 이미지

  •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GHQ의 수장·맥아더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GHQ의 수장·맥아더

  •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제신으로 모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사가 있는 쓰바키오카미야시로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제신으로 모시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사가 있는 쓰바키오카미야시로

마쓰시타 고노스케 프로필

이름
마쓰시타 고노스케
출생
1894년 11월 27일
사망
1989년 4월 27일
향년
94세
출생지
와카야마현 가이소군 와사촌(현재의 와카야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