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몬 시대
온난화와 토기의 등장으로 정착이 진행된 시대.
뗀석기를 사용해 수렵·채집을 하던 구석기 시대는 토기의 등장으로 ‘조몬 시대’라 불리는 시대로 옮겨갔습니다.
구석기 시대에서 조몬 시대로 넘어오며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세요.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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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의 발명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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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견과 채집과 어로가 쉬워져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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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확보가 안정되면서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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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주술 같은 개념이 이미 존재했음
토기의 등장과 온난화로 정착이 진행된 조몬 시대

조몬 시대는 기원전 약 1만 80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경까지, 약 1만 년간 이어졌습니다.
구석기 시대와의 가장 큰 차이는 ‘토기’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토기의 발명으로 이전에는 먹지 못하던 것들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온난화로 견과류가 풍부해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물고기를 잡기 쉬워지면서 식량을 구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수렵·채집으로 확보하는 식량도 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던 생활은 끝나고 점차 정착하게 됩니다.
조몬 시대 사람들의 생활
조몬 시대의 삶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사냥 도구를 손질하거나 토기를 만들며 지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사슴 같은 사냥감을 잡으러 가거나 밤을 주우러 가기도 했습니다.
현대와 달리, 일상에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직접 채집하러 가는 생활이었던 듯합니다.
이제 조몬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다양화가 진행된 조몬 시대의 도구

조몬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토기는 주로 조리에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견과를 빻거나, 생선과 견과를 끓이거나 굽는 데 사용하는 그릇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냥 도구는 구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돌, 동물의 뼈나 뿔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끝부분을 더 날카롭게 만든 점은 구석기 시대 석기와 다릅니다.
그 밖에도 조몬 시대에는 용도에 맞춰 다양한 석기가 제작됐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소형 휴대용 칼인 석제 스푼(석시), 위아래로 홈이 있는 어로용 추인 돌추(석추), 도토리 같은 견과류를 가는 돌판 등, 도구의 종류가 구석기 시대보다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또 조몬 시대부터 강과 호수에서 그물을 이용한 어로가 시작됐습니다.
구석기 시대에 비해 도구의 재료·종류·사용법이 다양해진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정착으로 달라진 주거 스타일 ‘움집(수혈식 주거)’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정착이 진행된 조몬 시대.
이동이 줄어들며 구석기 시대와는 주거 구조도 달라집니다.
땅을 파서 움푹하게 만든 뒤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반지하형 주거인 ‘움집(수혈식 주거)’이 조몬 시대의 대표 주거 형태였습니다.
집 안에는 단단히 다진 점토를 바닥에 깔고, 중앙에는 조리와 난방에 쓰는 화덕을 돌로 둘러 만든 구조였습니다.
다다미 6~12장을 깔 수 있는 정도의 넓이로, 가족 4명 정도가 한 집에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식량이 풍부한 곳에 움집이 모여 ‘마을’이 형성됩니다.
조리 기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늘어난 식생활

기원전 약 1만 5000년 전의 식사라고 하면, 반라의 남성들이 뼈 붙은 고기를 뜯는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몬 시대는 토기의 발명으로 굽기·끓이기·찌기·말리기·삶기 같은 조리가 가능해져, 훈제나 염장, 빵과 죽 등 다양한 음식을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은 밤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였습니다.
떫은맛이 나는 견과는 떫은맛을 빼고 가루로 만들어 죽이나 경단으로 먹었습니다.
강과 호수에서 어로를 시작하면서 연어·송어 같은 물고기와 조개도 자주 먹었고, 조개껍데기를 버린 곳인 ‘패총’이 형성된 것도 조몬 시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사냥도 계속됐고, 고기도 꾸준히 먹었습니다.
또 이빨과 뿔은 낚시바늘이나 펜던트로 가공하는 등 알뜰하게 활용했던 듯합니다.
사냥에 유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조몬인
조몬 시대에 일본 열도에 살던 사람들을 ‘조몬인’이라 부릅니다.
조몬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0cm가 채 안 됐고, 뼈대가 굵고 근력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굴 윤곽은 각지고, 눈썹이 진하며 또렷한 쌍꺼풀이었다고 합니다.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것으로 여겨지는 ‘야요이인’은 조몬인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얼굴 전체가 평평하며 세로로 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이 다른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혼혈을 통해 현대 일본인이 형성됐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기원과 주술의 개념이 이미 존재했던 조몬 시대
조몬 시대의 도구에는 수렵·채집이나 조리에 쓰는 것뿐 아니라, 풍요를 비는 도구나 액막이 장신구, 제사에 쓰는 토기 등 생활 필수품이 아닌 문화적 도구도 만들어졌습니다.
정착이 진행돼 취락이 형성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문화가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풍요를 기원하는 토제 인형 ‘도구(土偶)’

조몬 시대에 만들어진 소성(굽기) 토제 인형인 도구(土偶)는 조몬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 중 하나입니다.
도구는 여성이나 임산부를 본뜬 것이라는 설, 식물을 의인화한 인형이라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으며, 통일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여성·임산부를 본뜬 토제 인형으로, 자연의 풍요로운 은혜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설이든, 수렵·채집에 쓰는 도구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지닌 인형을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액막이 의미도 지녔던 장신구

조몬 시대에는 장신구를 착용하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신구의 재료로는 동물의 뼈·이빨·뿔·조개껍데기·비취·나무·점토 등이 쓰였습니다.
비취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장식 구슬 ‘마가타마’는 액막이나 주술적 의미를 담아 착용했다고 여겨집니다.
불꽃을 본뜬 듯한 형태가 인상적인 화염형 토기

조몬 시대에 만들어진 토기 중에서도 화염형 토기는 형태가 특히 독특합니다.
치솟는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으로, 윗부분 4곳에 큰 돌기가 있습니다.
그을음이 남은 화염형 토기도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취사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그 독특한 형태 때문에 제사 같은 의례 목적에 쓰였을 가능성을 말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몬 시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스폿
현재도 조몬 시대의 움집(수혈식 주거)이나 토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관심 있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세요.
조몬 시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소리 패총 박물관’
가소리 패총은 조몬 시대의 패총과 취락 유적입니다.
가소리 패총에는 토기·석기·도구(土偶) 등의 출토 자료를 볼 수 있는 박물관, 움집 터와 패층 단면을 관찰할 수 있는 야외 관찰 시설, 움집 복원 취락 등이 있어 조몬 시대 문화를 실제로 만날 수 있습니다.
조몬인의 지혜와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센다이시 조몬의 숲 광장’
야마다 우에노다이 유적에서 발견된 조몬 시대 취락 유적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조성된 ‘센다이시 조몬의 숲 광장’.
시설 내에는 야마다 우에노다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가 전시돼 있습니다.
조몬인의 지혜와 기술을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마가타마 만들기, 조몬 토기 만들기 체험, 불 피우기 체험 등이 인기입니다.
화염형 토기와 디오라마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니가타현립 역사박물관’
박물관이 있는 니가타현 나가오카시는 조몬 시대 화염형 토기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염형 토기를 비롯한 조몬 토기가 벽 한 면 가득 전시된 모습은 압도적입니다.
조몬인의 사계절 생활을 재현한 디오라마는 마치 그들이 실제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듯 느껴질 만큼 리얼합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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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의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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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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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에 만들어진 석제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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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의 움집(수혈식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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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 사람들이 조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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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에 만들어진 도구(土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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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에 장신구로 착용하던 마가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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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인상적인 화염형 토기
연혁
- 초창기
- 기원전 1만 5000년 전 〜 1만 년 전
- 초기
- 기원전 8000년 전 〜 6700년 전
- 전기
- 약 6000년 전
- 중기
- 기원전 5000년 전 〜 4000년 전
- 후기
- 기원전 4000년 전
- 만기
- 기원전 3000년 전 〜 300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