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전란의 시대가 태평성대로 옮겨가던 시기.
1573년부터 1603년까지 이어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무로마치 시대에 시작된 전란의 시대가 오다 노부나가(おだ のぶなが)와 도요토미 히데요시(とよとみ ひでよし)라는 두 천재에 의해 천하통일로 이어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태평성대로 바뀐 시기입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중심인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전국 3영걸을 축으로 시대의 흐름·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꽃핀 문화를 되짚어 봅시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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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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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치 미쓰히데의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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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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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가신들의 대립으로 천하를 가르는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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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엶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흐름
수많은 전국 다이묘가 각자의 뜻을 품고 전쟁에 몰두하던 전란의 시대.
각 다이묘에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천하통일의 흐름 중심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을 축으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돌아봅니다.
천하통일을 향해 권력과 세력을 키워가는 ‘오다 노부나가’

아시카가 요시아키(あしかが よしあき)를 받들어 교토로 진군한 오다 노부나가(おだ のぶなが).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15대 쇼군이 되고, 무로마치 막부라는 뒷받침을 얻은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을 목표로 세력 확장에 나섭니다.
하지만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무로마치 막부 부흥을 노렸고, 방침 차이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됩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전국 다이묘 아자이 나가마사(あさい ながまさ)와 손잡고 거병해 오다 노부나가에게 전쟁을 걸지만 패배.
오다 노부나가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가와치로 추방하고,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합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아자이 나가마사와의 전쟁에 집중하는 사이, 동맹을 맺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とくがわ いえやす)의 영지가 다케다 신겐(たけだ しんげん)에게 침공당해 ‘미카타가하라 전투’가 발발.
이 전투에서 다케다군이 승리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를 빼앗았습니다.
타도·오다 노부나가를 목표로 침공을 이어가던 다케다군이었지만, 다케다 신겐이 급사해 어쩔 수 없이 철수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은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たけだ かつより)가 도쿠가와 땅을 노리고 다시 침공.
다케다군과 도쿠가와·오다 동맹군이 맞붙는 ‘나가시노 전투’가 벌어집니다.
도쿠가와·오다 동맹군은 병력과 화승총을 활용한 전술을 살려, 강력한 기마대로 유명한 다케다군을 꺾었습니다.
뜻을 이루기 전에 꺾인 오다 노부나가

오랜 숙적이던 다케다군을 격파한 오다 노부나가는 목표인 천하통일을 위해 중국·시코쿠 평정에 착수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とよとみ ひでよし)에게는 중국 정벌을, 셋째 아들 오다 노부타카(おだ のぶたか)에게는 시코쿠 정벌을 명합니다.
중국 정벌 중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지원 요청 서신을 받은 오다 노부나가는 아케치 미쓰히데(あけち みつひで)에게 원군 선봉을 맡으라고 명령합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명령을 따르는 듯 보이다가, 원군으로 향하던 길에 들른 교토의 혼노지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이끄는 군세는 혼노지를 완전히 포위했고, 습격 약 4시간 후 아케치 미쓰히데의 하극상은 오다 노부나가의 자결로 막을 내렸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연 천하통일의 길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알게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중이던 모리 데루모토(もうり てるもと)에게 노부나가의 죽음을 숨긴 채 강화(講和)를 맺습니다.
뒤탈을 없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치기 위해 약 2만의 군을 이끌고 교토로 출발.
그 속도는 놀라웠고, 약 200km를 약 10일 만에 이동해 방심하던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수석 가로(家老)였던 시바타 가쓰이에(しばた かついえ)도 비보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에스기군의 공격을 받아 바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시바타 가쓰이에가 합류한 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한 뒤였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 다툼 속에서 큰 권력을 쥐게 됩니다.
후계자를 정하는 기요스 회의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보시(さんほうし)를 추천하지만,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셋째 아들 오다 노부타카를 추천.
기요스 회의를 계기로 두 사람은 대립하게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한 영향력으로 산보시가 후계자가 되지만, 어린 산보시의 후견인으로 오다 노부타카가 임명됩니다.
기요스 회의에서 가신단에 영지가 재분배된 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석 가로로 승진.
시바타 가쓰이에는 2인자가 되어, 두 사람의 입장이 역전됩니다.
농민에서 대출세를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주관하며, 자신의 양자인 하시바 히데카쓰(はしば ひでかつ)를 상주로 세워 치렀습니다.
상주 결정에 대해 상의조차 받지 못한 시바타 가쓰이에는 격분.
이 장례를 계기로 두 사람의 대립은 더 깊어집니다.
결국 전쟁으로까지 번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쓰이에의 오다 세력을 양분한 전투 ‘시즈가타케 전투’가 시작됩니다.
도요토미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시바타군 본대는 전원 전사.
가신들이 탈출 시간을 벌었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기타노쇼로 돌아가지만 자결합니다.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승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가신단에는 영지를 더해 결속을 강화하며, 천하통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조정으로부터 공가 최고 지위인 ‘간파쿠(関白)’에 임명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인이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

규슈까지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천하통일의 마무리로, 다이묘 간 사적인 전쟁을 금지하고 위반을 단속하는 ‘소부지레이(惣無事令)’를 간토·오우 지방에 발령합니다.
많은 다이묘가 복종 의사를 보였지만, 호조 씨의 가신이 소부지레이를 위반해 호조 씨를 토벌하는 전쟁 ‘오다와라 정벌’을 시작합니다.
호조 씨가 항복하며 오다와라성은 넘겨지고, 끝까지 저항하던 ‘쿠노헤 마사자네(くのへまさざね)’도 항복.
수많은 무장이 전투를 반복해 온 전국 시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로 막을 내립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부상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천하통일 후, 중요한 정무를 맡는 ‘오대로(五大老)’에 유력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에다 도시이에(まえだ としいえ)·모리 데루모토(もうり てるもと)·우키타 히데이에(うきた ひでいえ)·고바야카와 다카카게(こばやかわ たかかげ)를 임명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치를 보좌하는 ‘오부교(五奉行)’에는 가신인 마에다 겐이(まえだ げんい)·아사노 나가마사(あさの ながまさ)·마스다 나가모리(ました ながもり)·이시다 미쓰나리(いしだ みつなり)·나쓰카 마사이에(なつか まさいえ)를 임명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후에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とよとみ ひでより) 대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쥐는 것을 막고자, 오대로·오부교 체제로 유력 다이묘와 가신을 요직에 앉혔습니다.
죽음이 가까움을 깨달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시미성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여러 다이묘를 불러,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섬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유언을 무시하고 움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점차 큰 힘을 갖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독단에 오부교가 분노했고, 그 수장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립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한 문치파와, 전장에서 싸우는 무단파 사이에 균열이 생기며 무단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의지하게 됩니다.
이 대립까지 더해져,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갈등은 더 격해집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른 오대로와 오부교까지 따르게 하며 세력을 더 키우지만, 우에스기 카게카쓰가 반발.
군비를 갖추기 시작한 우에스기 카게카쓰를 반역 의혹으로 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토벌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합니다.
기회를 엿보던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정을 계기로 거병.
도쿠가와 가신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각지 다이묘의 협력을 얻어 대군을 모아, 도쿠가와 측 병력이 있는 후시미성을 공격합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쓰 토벌로 향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병 소식을 듣고, 이시다군과의 전투를 결단합니다.
천하를 가르는 전투·세키가하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맞붙는, 천하를 가르는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됩니다.
양군 합쳐 약 16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전투였지만, 약 6시간 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군에서 몰수한 영지를 자신과 동군의 다이묘들에게 포상으로 분배.
이시다 미쓰나리는 붙잡혀 교토에서 처형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로 천하를 손에 넣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면서,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에도 시대로 넘어갑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문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문화는 ‘모모야마 문화’라 불리며, 화려하고 호화로운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향이 강했다고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건축물과 오락 문화 등을 소개합니다.
권위의 상징 역할도 했던 성곽

모모야마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으로는 천수·토조·주거·담장 등으로 이루어진 ‘성곽 건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성은 전장 기능뿐 아니라 다이묘의 권위를 드러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모야마 문화의 성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이 특히 유명합니다.
전국 무장들이 열중한 바둑과 쇼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무장들은 바둑과 쇼기에 푹 빠졌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면 전국 다이묘로부터 칭호를 받거나, 초빙되어 거느려지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바둑은 판 위에서 영토를 다투고, 최종적으로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한 쪽이 승리.
쇼기는 아군 말이 줄어도 최종적으로 상대의 왕장을 잡으면 이기는 규칙입니다.
당시 무장들은 오락으로 즐기면서도 전술 연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천재가 완성한 ‘다도’

무로마치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일본 차 문화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선불교 의식 ‘차례(茶礼)’는 많은 다인(茶人)에 의해 일본식으로 다듬어집니다.
다인 무라타 주코(むらた じゅこう)가 정립한 와비차는 화려한 장식을 덜어내고, 소박하고 간결함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중국산 당물보다 일본산 와물이 선호됩니다.
이후 센노 리큐가 더 일본식으로 완성해 ‘다도·차노유’가 자리 잡았습니다.
차를 마시고 산지를 맞히는 ‘토차(闘茶)’가 유행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일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수많은 무용담이 남아 있지만, 조금 독특한 에피소드도 그만큼 전해집니다.
이 시대에 활약한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영걸들의 인간적인 면을 알면,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흐름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별명이 심했던 ‘오다 노부나가’

천하통일을 꿈꾼 카리스마로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은 ‘오와리의 대우쓰케’였습니다.
‘우쓰케’는 어리석은 인물을 뜻하는 말.
즉, 주변에서 무시당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한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남의 밥을 빼앗아 먹는 등 기행이 눈에 띄어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오다 노부나가의 자질을 알아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내 노히메의 아버지 사이토 도산입니다.
사이토 도산과의 중요한 회견 자리에도 늘 하던 대로 화려한 차림으로 나타난 오다 노부나가.
그대로 기둥에 기대 털썩 앉았다고 합니다.
딸의 결혼 상대가 첫 만남에 이런 태도를 보이면 보통은 화가 나기 마련이죠.
하지만 사이토 도산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범상치 않은 기운과 당당한 태도, 응대에서 ‘그저 바보가 아니다’라고 본질을 꿰뚫고 결혼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게다가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노부나가에게 미노를 넘긴다’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발상과 행동력으로 천하통일까지 한 걸음 앞까지 다가간, 오다 노부나가다운 에피소드입니다.
신체적으로도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농민에서 천하인으로, 대출세를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람을 끌어들이는 성격이나 전쟁에 강했던 면 등 천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체적으로도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손가락이 남들보다 많은 ‘다지증’이라 불리는 선천성 이상으로, 엄지손가락이 2개였다고 합니다.
다지증으로 태어난 무장 가문의 아이는 어릴 때 처치했지만, 히데요시는 농민 출신이라 처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손가락 6개인 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도 여럿 남아 있으며, 마에다 도시이에(まえだ としいえ)의 ‘국조유언’에도 히데요시의 손가락이 6개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인은 고집?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인은 ‘튀김을 너무 많이 먹어 생긴 복통’이라는 설이 통설이지만, 연구가 진행되며 실제 사인은 암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이에야스가 거느리던 의사의 진료에 따르면, 배 안에 멍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여러 조언을 했지만, 건강에 집착하고 젊을 때부터 몸을 단련했으며 약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조제까지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암이 진행되어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지식이 있다고 전문가 의견을 흘려듣는 경우는 지금도 있지만, 괜한 고집은 피하고 싶네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스폿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나, 센노 리큐의 다실과 정원을 찾아 전란의 시대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글로만 아는 것보다 실제로 현장을 방문하면,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겁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 천수각’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68−1600년)에 천하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에 축성을 시작해 1585년에 완성한 오사카성 천수각입니다.
이후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함락되지만, 1626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화려한 흔적이 남은 ‘고다이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 아래 이곳에 있던 절의 이전과 부지 정비·조영을 거쳐 완성된 사찰의 모습은 장엄함의 극치였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많은 전각을 소실했지만, 개산도와 영야·표문·관월대·다실인 가사테이·시구레테이는 지금도 남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화려한 분위기를 전합니다.
모두 창건 당시의 것으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유산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거처 터 ‘기후 공원’
기후성이 정상에 있는 긴카산 기슭에 자리한 공원으로,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이곳은 전국 시대 기후성주였던 사이토 도산과 오다 노부나가의 거처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로, ‘도산 시대의 석축’과 발굴 조사가 진행 중(2021년 7월 기준)인 ‘오다 노부나가 공 거처 터’ 등 귀중한 역사 자산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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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가르는 결전 ‘세키가하라 전투’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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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노 전투에서 활약한 당시 최신 병기·화승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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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와 아케치 미쓰히데 관련 전시품이 많이 소장된 현재의 혼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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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스 회의가 열린 기요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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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승리한 ‘시즈가타케 전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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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씨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간 오다와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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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난 후시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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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 현장에 세워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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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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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무장들이 열중한 쇼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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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야마 문화에서 완성된 다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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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의 큰 바보’라 불렸던 오다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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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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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마니아였기에 의사의 말을 듣지 못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혁
- 1560년
-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토벌
- 1562년
- 기요스 동맹.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동맹을 맺음
- 1568년
-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함께 상경,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쇼군이 됨
- 1575년
-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이 다케다군에 승리
- 1582년
-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 사망
- 1583년
- 오다 노부나가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바타 가쓰이에에 승리
- 1585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간파쿠에 임명됨
- 1587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을 실시
- 1590년
- 오다와라 공략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조 가문을 멸망시킴
- 1598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 1600년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
- 1603년
-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가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