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시대
중앙집권 국가의 시작과 치열한 권력 다툼이 만든 격동의 시대
나라 시대의 기간은 710~784년(74년)으로 보는 설과 710~794년(84년)으로 보는 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710~794년(84년) 설을 기준으로 나라 시대를 소개합니다.
나라 시대가 시작된 710년을 외우는 말장난으로 ‘나(7)라(10) 멋진 헤이조쿄’가 있지만, 실제 나라 시대는 새로운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발한 만큼, ‘멋진 시대’라고 하긴 어려운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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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을 군주로 하는 중앙집권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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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으로 율령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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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내부의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후지와라 씨가 세력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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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발전하며 일본 각지에 국분사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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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중심의 덴표 문화가 번성했다
나라 시대의 흐름
천황을 군주로 하는 중앙집권형 정치가 시작된 나라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요?
새 체제의 정치는 농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권력이 모인 조정에서는 격렬한 권력 다툼도 이어졌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나라 시대를 함께 돌아봅시다.
중앙집권형 정치로 바뀐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직전의 아스카 시대는, 지방 지배권을 가진 호족들이 세력을 나눠 갖던 지방 분권적 체제에서, 천황을 군주로 통제하는 중앙집권형 체제로 전환이 이뤄진 시기였습니다.
새 정치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당나라 제도를 참고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을 전국에 적용했습니다.
이 ‘다이호 율령’으로 천황을 군주로 한 조정이 일본의 사람과 토지를 직접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수도인 후지와라쿄(藤原京)에서 헤이조쿄로 천도한 710년에 나라 시대가 시작됩니다.
중앙집권형 정치가 농민에게 미친 영향

중앙집권형 정치로 바뀌면서 농민은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농민의 소유지였던 논밭은 ‘공지공민제’로 천황의 소유가 되었고, 조정이 ‘구분전(口分田)’을 빌려줍니다.
농민은 ‘구분전’을 경작하고, 수확물 일부를 세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빌린 땅을 갈 동기가 약했던 농민도 많아 ‘구분전’을 경작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인구 증가로 ‘구분전’이 부족해지면서 천황에게 세금이 모이지 않게 됩니다.
해결책으로 농민이 스스로 개간한 토지는 3대까지 소유할 수 있는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을 공포했습니다.
하지만 개간의 수고에 비해 소유 기간이 짧아, 기대한 성과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다음 대안으로, 스스로 개간한 토지를 무기한 소유할 수 있는 ‘곤덴에이넨시자이법(墾田永年私財法)’을 시행합니다.
‘곤덴에이넨시자이법’으로 농민의 개간이 늘며 세금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조정의 재정도 회복됐다고 전해집니다.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후지와라 씨가 세력을 키우다

정치의 중심이 된 조정 내부의 권력 다툼은 격렬했고, ‘나가야오의 변’과 ‘후지와라노 히로쓰구의 난’이 일어나는 등 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정한 체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헤이안 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는 ‘후지와라 씨’가 세력을 키워 갑니다.
다이카 개신에서 활약한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의 아들 후지와라노 후히토는 풍부한 법 지식을 바탕으로 제41대 지토 천황에게 중용되며 다이호 율령과 요로 율령(養老律令) 제정에 기여했습니다.
또 헤이조쿄 천도에도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 공적으로 후지와라노 후히토는 딸을 제42대 몬무 천황에게 시집보내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제45대 쇼무 천황이 되면서, 후지와라 씨는 조정 내 권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국분사와 대불 조성이 시작되다

쇼무 천황 재위 시기에는 천연두 유행과 자연재해로 나라 자체가 불안정했습니다.
이에 쇼무 천황은 불교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진호국가’를 염원하며 ‘국분사 건립의 조’와 ‘대불 조성의 조’를 반포합니다.
그 결과 일본 각지에서 국분사와 금동 대불 조성이 시작됩니다.
‘대불 조성의 조’로 만들어진 대불은, 오늘날 나라현 도다이지에 있는 루샤나불(廬舎那仏)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승려와 후지와라 씨의 권력 다툼

조정 내에서도 강한 권력을 가졌던 후지와라 씨였지만, 제46대 천황이었던 고켄 상황의 총애를 받은 승려 도쿄가 부상하면서 후지와라 씨의 권력은 약해집니다.
도쿄를 조정에서 몰아내기 위해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무장 봉기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에미노 오시카쓰의 난’은 실패로 끝났고,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살해됩니다.
하지만 도쿄의 사리사욕에 찬 정치와 황위 계승자로 옹립되려는 움직임은 조정에서도 반발이 커, 후지와라노 모모카와 등이 이를 막아 도쿄는 실각합니다.
다시 후지와라 씨가 세력을 키우며 제49대 고닌 천황 때에는 권력 다툼도 한풀 꺾입니다.
그리고 고닌 천황 다음인 간무 천황 때, 세력이 커진 사원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천도하면서 헤이안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나라 시대의 문화
새 체제의 정치 시작과 조정 내 격렬한 권력 다툼 속에서도 문화는 자라나,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문화·서적·건축물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라 시대 문화를 돌아보며 당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귀족 중심의 화려한 문화, 덴표 문화

나라 시대 문화는 덴표 문화라 불리며, 귀족 중심으로 화려하고 불교적 색채가 짙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 특징은 ‘도다이지 쇼소인’, ‘도쇼다이지 간진 화상상’, ‘고후쿠지 아수라상’ 등 사원과 불상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화폐 ‘와도카이친’ 유통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나라 시대.
708년에 만들어진 화폐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은 전국에 널리 퍼진 최초의 화폐였습니다.
와도카이친 이전에도 ‘후혼센(富本銭)’이라 불리는 화폐가 만들어졌지만 유통이 많지 않아, 물물교환이 거래의 기본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집 완성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유명한 ‘고지키’와 ‘니혼쇼키’는 나라 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천황을 신의 후손으로 보여 줌으로써 일본을 다스리기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역사를 정리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인 ‘만요슈’도 나라 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귀족뿐 아니라 서민의 노래도 실려 있어, 나라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책입니다.
나라 시대의 기묘한 사건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하는, 나라 시대의 기묘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두 가지 사건을 알면 당시 사람들에게도 묘한 친근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신이 천황이 되라 했어!” 승려의 사기 사건
일본 3대 악인으로도 꼽히는 도쿄.
도쿄는 여성 천황인 고켄 상황의 총애를 받은 승려로, 조정 최고위 ‘다이조다이진젠지(太政大臣禅師)’에 임명되고, 마침내 종교적으로는 천황보다도 높다고 여겨지는 ‘법왕’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도쿄는, 측근 승려를 시켜 “도쿄를 천황으로 하면 평화로워진다”는 신탁을 내리게 하며 황위에 오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의심한 고켄 상황이 다른 승려에게 신탁을 내리게 하자, 결과는 “천황은 황족이 되는 것이며 도쿄는 빨리 쫓아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신탁도 있어 도쿄는 천황이 되지 못했고, 후지와라 씨의 힘으로 조정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거짓 신탁으로 천황이 되려 한 이 사건은 ‘우사하치만구 신탁 사건’이라 불리며, 도쿄는 좋지 않은 형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금지령이 내려질 만큼 도박에 빠지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그 도박이 나라 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실내 놀이로 스고로쿠가 유행했고,
사람들은 점점 열중해 집안 살림을 거는 도박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너무 과열된 탓인지 금지령까지 내려졌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흥미로운 에피소드죠.
나라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스팟
나라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혹은 번성했던 유산은 지금도 남아 국보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스팟을 방문해 당시 문화를 직접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나라의 대불로 유명한 ‘도다이지’
나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 중 가장 유명한 도다이지.
세계 최대급 목조 건축물 ‘대불전’을 비롯해, 도다이지 건축 중 가장 오래된 홋케도(산가쓰도), 일본 국내 최대의 산문인 난다이몬 등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조정의 기원 사찰로 번성한 ‘고후쿠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개인 저택 ‘야마시나데라’로, 야마시로국 야마시나스에하라에 세워진 것이 시작이며, 710년 헤이조쿄 천도에 따라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계획으로 나라로 옮겨 ‘고후쿠지’로 개명했습니다.
나라 시대에는 조정의 기원 사찰인 4대 사찰로 번성했습니다.
국보 건축물과 중요문화재가 늘어서 있어, 다양한 사보와 문화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나라 시대에 조성된 ‘호라이 정원 오이케지’
나라 시대에 방문한 교키 보살이 ‘마음(心)’ 자 형태로 연못을 만들고, 네 개의 연못 거의 중앙에 본당을 세우며, 교키 보살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석가여래상을 봉안한 것이 시작이라고 하는 ‘오이케지’.
선사의 정원인 호라이 정원도 볼거리 중 하나로, 이 가레산스이 정원은 다인(茶人)이자 건축·조원(造園)의 명수로 알려진 고보리 엔슈가 에도 시대 초기의 손을 댄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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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 귀족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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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조궁터 남쪽에 있었던 스자쿠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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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이 빌려준 ‘구분전(口分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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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저택 터로 전해지는 고찰, 홋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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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 조성의 조’로 세워진, 통칭 ‘나라의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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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총애를 받은 도쿄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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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표 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에 세워진 도쇼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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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도 유적에 전시된 와도카이친 모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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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키에서 일본 발상지로 전해지는 아와지섬의 비석
연혁
- 710년
- 헤이조쿄로 천도
- 712년
- ‘고지키’ 완성
- 720년
- ‘니혼쇼키’ 완성
- 723년
- 삼세일신법 제정
- 724년
- 쇼무 천황 즉위
- 729년
- 나가야오의 변 발생
- 740년
- 후지와라노 히로쓰구의 난 발발
- 741년
- 국분사 건립의 조 반포
- 743년
- 대불 조성의 조 반포
- 757년
- 요로 율령 시행
- 765년
- 에미노 오시카쓰(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난 발발
- 765년
- 도쿄가 다이조다이진젠지가 됨
- 781년
- 간무 천황 즉위
- 784년
- 나가오카쿄로 천도
- 794년
- 헤이안쿄로 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