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원폭 돔 관광 전에 알아두어야 할 역사와 기본 정보
1945년 8월 6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현, 그리고 3일 뒤 나가사키현에도 투하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다.
“원폭 돔”은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낳은 참혹한 현실을 오늘에 전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역사를 잇는 건조물이다.
이 기사에서는 “원폭 돔”의 존재 의의와 원폭의 참혹함을 역사와 함께 되짚어 보며 자세히 소개한다.
끝까지 읽으면 “원폭 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물론, 관광할 때 원폭 피해의 현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광 전에 알아두어야 할 원폭 돔의 역사
“원폭 돔”에 갈 때는 가능하다면 그 역사를 알고 방문했으면 한다.
이유는 실제로 “원폭 돔”을 마주했을 때 받는 인상과 느끼는 의미의 깊이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원폭 돔”의 변천과 원폭에 관한 역사를 설명하겠다.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으로 설립
원래 “원폭 돔”은 1915년에 히로시마현 내의 물산품을 전시·판매하던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이라는 시설이었다.
체코 출신 건축가 얀 레츨이 설계해 완성한 이 시설은 3층 건물 위에 타원형 돔을 얹은 벽돌 구조가 특징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유럽풍의 아름답고 모던한 건물로, 세제션 양식이라 불리는 기하학적이고 대담한 장식이 더해져 있다.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은 시민들에게도 사랑받는 히로시마의 명소가 되었고, 히로시마 미술전람회·박람회 등의 행사로 활기를 띠었다.
이후 1921년에 “히로시마현 상품진열소”, 1933년에는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폭 투하로 순식간에 반파된 폐허로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은 히로시마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1944년에 업무를 중단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8시 15분에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의 동쪽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폭발했다.
폭풍과 열선에 휩쓸린 폭심지 반경 2m 이내의 건조물은 순식간에 붕괴했고, 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도 1층~3층의 주요 부분은 거의 전괴했지만, 돔 부분은 기적적으로 충격을 견뎌 골조·외벽 등은 남아 반파에 그쳤다.
창문과 바닥도 남아 있었으나 화재로 결국 전소해 철골과 벽돌이 드러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은 어느새 “원폭 돔”이라 불리게 되었다.

원폭 돔 보존을 위한 활동
전후 일본은 복구가 진행되면서 피폭 건조물도 수리·해체가 이뤄지고 있었다.
“원폭 돔”에 대해서는 철거·보존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며 논의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점차 보존에 드는 경제적 부담과 붕괴 위험성 때문에 철거 쪽으로 기울어 갔지만, 피폭자 가지야마 히로코 씨가 남긴 일기가 흐름을 바꿨다.
특히 유명한 일기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소개하겠다. ※산업장려관=원폭 돔
“あのいたいたしい産業奨れい館だけがいつまでもおそるげん爆を世にうったえてくれるだろうか。”
관심이 있다면 전문을 읽어 보길 바란다.
1살 때 피폭을 겪은 가지야마 씨는 골수성 백혈병으로 고등학교 1학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일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보존을 요구하는 모금과 서명 운동이 시작됐고, 1966년에 히로시마 시의회가 “원폭 돔”의 영구 보존을 결의했다.

1996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의 이듬해 모금 등을 통해 “원폭 돔”의 보존 공사가 시작·완료되었고, 히로시마시의 관리 아래 정기적인 수리도 이뤄졌다.
1992년 일본이 세계유산 협약에 동의한 것을 계기로 “원폭 돔”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히로시마 시의회는 문화청에 요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원폭 돔”은 세계유산조약에 기재된 추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다른 나라를 자극하는 일을 피하고 싶다는 정치적 배경도 겹쳐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현내 지자체의 의견서와 시민단체 결성에 더해, 세계유산 등재를 요구하는 총서명 수가 최종적으로 165만을 넘는 등 큰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문화청은 문화보호법을 개정했고, 1995년에 “원폭 돔”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세계유산 추천도 진행했다.
그리고 1996년 12월에 “원폭 돔”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핵무기 폐기와 세계평화를 계속 호소하는 “원폭 돔”
무수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피폭자와 그 유족들의 인생까지 바꾼 한 발의 원자폭탄.
피폭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원폭 돔”은 인류 역사상 처음 투하된 원폭의 참화를 있는 그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피폭자가 해마다 줄어드는 가운데, 역사의 증인이라는 역할도 시대를 넘어 이어갈 것이다.
또한 핵무기 폐기와 세계평화를 계속 호소하는 다짐의 상징으로서의 존재 의의도 지닌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어두운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원폭 돔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원폭 돔” 주변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관광객은 내부에 들어가거나 견학할 수 없다.
따라서 안쪽을 보고 싶다면 “원폭 돔” 북쪽의 관광안내판에 설치된 AR 마커를 읽어 보자.
이 사이트에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뒤 AR 카메라를 실행해 마커 부분에 비추면 360도 뷰로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울타리 밖에서는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므로 외관 감상은 언제든 가능하다.
매일 라이트업되는 일몰부터 자정 무렵까지인 20:00~0:00 전후에는 밤의 정적에 둘러싸인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추천한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원폭 돔”에서는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전쟁의 비극이 함께 느껴져 먹먹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근처에는 13층 규모의 복합빌딩 “오리즈루 타워”가 있어 옥상 전망대에서 “원폭 돔”과 “평화기념공원”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히로시마 리버 크루즈”의 세계유산 항로에서는 “원폭 돔”과 “미야지마”를 배 안에서 견학할 수 있다.
이런 관광 명소와 액티비티와 함께 “원폭 돔”도 체감해 보길 바란다.


원폭 돔으로 가는 방법
히로시마 관광의 이동 거점인 “히로시마역”을 출발점으로 한 “원폭 돔”까지의 가는 방법을 소개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갈 수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노면전차·노선버스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면 좋다.
참고로 도보로 갈 경우 약 35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노면전차 이용 시
-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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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R 히로시마역”에서 히로시마 전철 2호선 “히로덴 미야지마구치”행 또는 “히로덴 니시히로시마”행, 혹은 6호선 “에바”행을 타고 “원폭 돔 앞역”에서 하차
2.“원폭 돔 앞”에서 도보 수분이면 “원폭 돔” 도착 - 소요시간
- 약 20분
노선버스 이용 시
-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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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히로시마역” 신칸센 출구의 “메이푸루~푸” 승차장에서 관광 순환버스 “히로시마 메이푸루~푸” 오렌지 루트를 타고 버스 정류장 “원폭 돔 앞”에서 하차 ※그린·레몬 루트도 가능
2. “원폭 돔 앞”에서 도보 수분이면 “원폭 돔” 도착 - 소요시간
- 약 20분
원폭 돔의 운영시간과 입장료
원폭 돔은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으며, 공원도 원폭 돔도 상시 개방되어 있다.
입장료도 무료이므로 언제든 관광할 수 있다.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며 참혹한 역사를 배우고 느껴보자
폭심지 주변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은 인류의 영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정비가 진행되어 공원 내 시설이 건설되었다.
피폭 10년 뒤인 1955년에 완성되었고, 지금도 피해자를 추모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있다.
“평화기념공원”에는 “원폭 돔” 외에도 지금부터 소개할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원폭 사몰자 위령비”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참혹한 역사를 배우고 느끼기 위해서라도 “원폭 돔”과 함께 들러 보길 바란다.
1.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원폭의 참화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설립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는 원폭에 관한 다양한 자료·사진·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6개 코너로 이루어진 상설 전시를 통해 원폭 전후 히로시마시의 모습과 원폭 피해의 전체상, 핵무기의 위험성을 깊이 이해하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너덜너덜해진 유품과 유족의 분노와 고통의 목소리, 모든 것을 빼앗긴 피폭자가 보낸 삶의 소개 등 아프고 생생한 전시물에서 원폭의 비열함을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방문객도 늘고 있어, 원폭 피해의 실상과 핵무기의 위협에 충격을 받는 이들도 많다.

2. 원폭 사몰자 위령비
“원폭 사몰자 위령비”는 원폭으로 괴멸된 히로시마의 평화도시로서의 재건을 기원하며 세워진 비석이다.
“비와 이슬로부터 원폭 희생자의 영혼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지붕은 하니와의 집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비석에는 “편히 잠드소서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진정한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비문의 의미가 외국인에게도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다언어 설명판이 설치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길 바란다.

원폭 돔 주변 인기 맛집 3선
원폭 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음식점 가운데 특히 인기가 높은 곳만 엄선해 소개한다.
히로시마 명물 오코노미야키를 맛볼 수 있는 유명 맛집도 골랐으니 꼭 여행 일정에 넣어 보길 바란다.
1. 히로시마 명물 오코노미야키 레이짱
히로시마역과 직결된 상업시설 “ekie” 1층에 있는 곳이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히로시마 명물 오코노미야키 레이짱”이다.
1957년 창업, 65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로 알려져 있다.
한 장씩 정성껏 구워 내는 오코노미야키는 단맛이 살아나는 양배추, 특주 소바, 돼지고기, 달걀 등을 겹겹이 구워 재료의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2. 야키니쿠 후루사토 단바라 본점
“야키니쿠 후루사토 단바라 본점”은 히로시마현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야키니쿠 전문점이다.
사카키야마규의 생산·출하 관리, 도매, 가공의 모든 과정이 야키니쿠 후루사토 단바라 본점에서 이뤄진다.
도축부터 제공까지 일절 냉동하지 않고, 육질의 신선도와 감칠맛을 끌어내는 것이 야키니쿠 후루사토의 방식이다.

3. 야겐보리 핫초
야겐보리 핫초는 히로시마시 내에 많은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가운데서도 최상급 인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가게 앞에는 연일 줄이 늘어서고, 다양한 매체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오코노미야키 굽는 시간은 20~30분이다.
오코노미야키 안의 중화면을 바삭하게 구워 내 그 식감도 일품이다.

원폭 돔 후기
후기 중 일부는 AI 번역을 통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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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미국 사람들에게도 봐주었으면 하는 곳입니다. 이것을 보고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이 필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의의 핵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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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이곳에 왔는데,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느꼈습니다. 책으로만 접했던 과거의 역사를 이런 원폭 관련 건축물을 통해 당시의 상황으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진심으로 느꼈고, 다시는 세상에 전쟁이 없기를 바랍니다!
원폭 돔에 관한 자주 묻는 질문
Q
원폭 돔 내부는 견학할 수 있나?
주변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내부 견학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스마트폰으로 AR 마커를 읽으면 360도 뷰로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원폭 돔은 왜 지금도 남아 있나?
피폭의 참혹한 역사를 미래에 전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평화의 상징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Q
원폭 돔은 원래 어떤 시설이었나?
히로시마현 내의 물산품을 전시·판매하던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이라는 시설이었습니다.
정리
“원폭 돔”의 역사와 함께 원폭의 참혹함, 그리고 오늘날에도 보존되는 존재 의의를 중심으로 소개해 왔다.
피폭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원폭 돔”은 시대를 넘어 비인도적인 핵무기의 위협을 지금도 전 세계에 계속 호소하고 있다.
“원폭 돔”을 찾아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껴 보길 바란다.
이 기사에서는 히로시마 관광에 도움이 되는 맛집과 숨은 명소 같은 정보를 다양한 각도에서 정리했으니 함께 읽으면 참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