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국시대의 난세를 끝내고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시대를 연 천하인

갱신일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 막부를 연 인물입니다.
전국시대 무장으로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널리 알려진 위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인질로 자랐으며, 독립한 뒤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하로 복종하며 끈기 있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해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연 에도 막부는 약 260년간 이어졌으며, 에도 막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를 에도시대라고 합니다.
※에도=현재의 도쿄

전국시대를 끝내고 오랫동안 이어진 시대를 만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생애와 명언, 일화를 통해 상상해 봅시다.

포인트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 초기까지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입니다
  • 어린 시절을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보냈습니다
  •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은 뒤 독립해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하로 복종했습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정이대장군이 되었습니다
  •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를 열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표

연도 주요 사건
1542년 미카와에서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1548년 오다 가문의 인질이 됩니다
1549년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이 됩니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 이마가와 가문 측으로 출전합니다
1562년 오다 노부나가와 기요스 동맹을 맺습니다
1566년 미카와국을 통일합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싸워 다케다 가문에 승리합니다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합니다
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승리합니다
1586년 교토로 올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하로 복종합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간토로 영지를 옮기라는 명을 받고 에도성에 입성합니다
1598년 오대로의 수장으로 임명되어 도요토미 정권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합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1603년 정이대장군에 임명되어 에도 막부를 엽니다
1605년 정이대장군 자리를 셋째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물려줍니다
1614년 오사카 겨울 전투가 발발합니다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킵니다
1616년 사망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

인질로 시작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를 그의 업적과 함께 살펴봅시다.

인질로 보낸 어린 시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42년 미카와국(현재의 아이치현) 오카자키성에서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오다 노부히데가 오카자키성을 침공하자 아버지 마쓰다이라 히로타다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그 대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요구대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인질로 보내졌지만, 호송하던 가신이 배신하면서 오다 노부히데에게 팔려 인질이 되었습니다.

오다 노부히데 밑에서 6세부터 8세까지 인질로 지냈으며, 8세 때 인질 교환을 거쳐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보내집니다.
이번에는 이마가와 요시모토 밑에서 인질로 지내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성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성

인질 신분에서 벗어나 다이묘로

오다 노부나가와 이마가와 요시모토 사이에 벌어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한 이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독립해 오다 노부나가와 기요스 동맹을 맺습니다.

조금씩 세력을 키워 동서로 나뉘어 있던 미카와국을 통일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협력을 얻어 자신을 인질로 삼았던 이마가와 가문을 공격해 멸망시킵니다.

협력자였던 다케다 신겐이 오다 노부나가와 대립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의 공격을 받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참패합니다.
이후 다케다 신겐이 사망하자 반대로 공세에 나서 나가시노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영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가 됩니다.

기요스 동맹을 맺은 오다 노부나가
기요스 동맹을 맺은 오다 노부나가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

1582년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으로 동맹을 맺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영지였던 가이(현재의 야마나시현), 시나노(현재의 나가노현), 고즈케(현재의 군마현)를 공략해 자신의 영지로 삼습니다.
기존 영지였던 도토미(현재의 시즈오카현), 미카와와 합쳐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합니다.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립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신하로 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신하로 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 오다 노부카쓰가 다투는 가운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카쓰의 군대를 지원했습니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약 10만 명 군대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카쓰의 약 1만 6천 명 군대로 격퇴합니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는 오다 노부카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화친 제안을 받아들여 휴전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더 이상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싸울 이유가 없어집니다.

이후 천하 통일을 목표로 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5개국을 다스리던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복속시키려 접근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하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어머니를 인질로 보내는 등 온갖 방법으로 그를 복종시키려 합니다.
결국 끈질긴 설득에 못 이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정권 아래 간토를 통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신하로 복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오다와라 정벌을 통해 천하를 통일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기존 영지를 빼앗기고 간토 8개국으로 영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아 근거지를 에도성으로 이전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이에야스는 간토 영지 경영과 군제 개혁에 힘쓰고 유력한 가신들을 각지에 배치해 간토에서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옛 다케다군과 호조 가문의 가신들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키웠고, 결과적으로 세력을 더욱 확대했습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여러 방면으로 기여하며 신뢰도 얻었습니다.

에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고쿄가 들어서 있습니다
에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고쿄가 들어서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천하를 통일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도요토미 정권의 최고 권력 기관인 오대로에 임명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권력을 활용해 천하 통일을 위해 착실히 세력을 넓혀 갔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시다 미쓰나리 등과 대립하게 됩니다.

이 대립을 계기로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 사이에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이 승리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서군의 주요 인물들을 처벌하고 도요토미 가문의 세력을 크게 축소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래 천하가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천하의 향방을 가른 전투로 불리는 ‘세키가하라 전투’
천하의 향방을 가른 전투로 불리는 ‘세키가하라 전투’

에도 막부 수립

1603년 조정으로부터 정이대장군에 임명되어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에도 막부를 엽니다.

최고 권력자가 되어 막부를 열었지만 아직 안정적인 정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다이묘를 통제하는 무가제법도와 조정 및 공가의 행동을 규제하는 금중병공가제법도 등의 정책을 시행하며 도쿠가와 가문과 에도 막부의 안정적인 정권 확립을 추진합니다.

막부를 세운 지 불과 2년 뒤인 1605년, 셋째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물려줍니다.
쇼군직을 자신의 아들에게 계승함으로써 에도 막부가 세습제임을 천하에 분명히 알렸습니다.
그러나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물려준 뒤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고쇼의 지위에서 정무를 지휘했습니다.

1603년 에도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1603년 에도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반대 세력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

이 시점에도 과거 천하를 통일했던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지 않았고, 에도 막부의 반대 세력이 도요토미 가문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1614년과 1615년에 벌어진 오사카 겨울·여름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에도 막부의 기반을 굳건히 다집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6년 사망했고, 이듬해 구노잔 도쇼궁에 모셔졌습니다.
덴푸라를 지나치게 먹어 생긴 소화불량이 사인이라는 설도 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위암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은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은 오사카성

명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지만, 쇼군에서 물러날 때 남겼다는 유훈이 특히 유명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면 부족함이 없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거든 곤궁했던 때를 떠올려라.
인내는 평온과 장수의 근본이며,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해가 자신에게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탓하지 마라.
모자란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알기 쉽게 풀어쓰면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서둘러서는 안 된다.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면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욕심이 생기면 힘들었던 때를 떠올려라.
참는 것은 오래도록 무사하고 평안하게 지내는 기본이며,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을 탓하더라도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것보다 조금 모자란 편이 낫다.”

인질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온갖 고생을 겪고 천하를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품이 드러나는 명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화

명언과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별명은 ‘너구리 영감’

늙고 교활한 남자를 욕할 때 쓰는 ‘너구리 영감’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별명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너구리 영감’이라 불린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뚱뚱한 체형 때문만은 아닙니다.
속이 검고 교활한 성격도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 성격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미카와의 다이묘였던 시절, 영지 내 잇코잇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봉기 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화친을 맺고 잇코잇키를 일으킨 단체를 해산시킵니다.
하지만 해산하자마자 태도를 바꾸어 무력을 동원해 잇코잇키 단체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진압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속인 일화가 여럿 있으니 ‘너구리 영감’이라 불려도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대변을 봤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은 승부욕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명과 체형 때문에 온화한 이미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승부욕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1573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에게 참패합니다.
전투에서 달아나던 중 두려움에 못 이겨 말 위에서 대변을 보고 맙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가신이 지적하자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이건 똥이 아니라 된장이다”라고 우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신들 앞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너무나 억지스러운 변명을 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귀엽게 느껴지는 일화입니다.

가신을 아낀 이상적인 상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하로 복종하던 시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네가 자랑하는 보물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가신들이 나의 보물이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평소 가신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사로 모시고 싶은 전국시대 무장’ 같은 설문조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가신을 아끼는 마음’ 때문일지 모릅니다.

새 옷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화낼 만큼 검소했던 인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낭비를 무엇보다 싫어한 검소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가신이 새 옷을 맞췄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냈습니다
・같은 옷을 계속 입었습니다
・망가진 마구간을 수리하지 않았습니다
등 검소함을 보여 주는 일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순간에는 아낌없이 돈을 썼다는 점에서, 돈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평소 절약에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약을 직접 조제할 만큼 건강에 진심이었던 인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평균 수명이 약 35세였다고 하는 시대에 75세까지 살았습니다.
물론 전쟁에서 죽지 않은 것도 장수한 이유였지만, 또 다른 이유는 ‘건강 마니아’였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해 영양가 높은 보리밥을 즐겨 먹고, 직접 한약을 조제하며,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는 등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는 일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자를 좋아했다?

여성 취향은 나이에 따라 변해 젊은 시절에는 나이 든 여성을 좋아했지만, 60대에 접어들어 취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0대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년에도 자녀를 얻는 데 힘썼으며, 아내가 20명, 자녀가 16명이었다고 합니다.
에도 막부와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 후손을 남기는 일이 중요했다고 해도, 아내와 자녀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인연이 있는 건축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인연이 있는 건축물은 오늘날 일본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니조성

천황이 거주하는 교토고쇼를 수호하고 교토에 왔을 때 머물기 위해 지은 니조성은 오늘날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에도 막부 제3대 쇼군 이에미쓰 시대에는 천황을 맞이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개수를 통해 일본 회화로 유명한 가노 단유의 장벽화와 다채로운 조각, 장식 철물로 꾸며진 화려한 성에 천황을 맞이함으로써 에도 막부가 안정되었음을 널리 알렸습니다.

제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정봉환도 니조성에서 이루어졌기에, 도쿠가와 가문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위신을 걸고 세운 나고야성

나고야성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의 도요토미 가문이 공격해 올 경우에 대비해 지은 성입니다.

거대한 지붕에는 금빛 샤치호코 2개가 빛나며,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 견고한 배치를 갖춘 일본 최대급 성곽은 도요토미 가문에 도쿠가와 가문의 위신을 보여 주었습니다.
5층 지붕을 지닌 천수각 꼭대기에서 빛나는 암수 한 쌍의 금빛 샤치호코는 나고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닛코 도쇼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망한 이듬해인 1617년에 세워진 닛코 도쇼궁은 세계문화유산 ‘닛코의 신사와 사찰’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모인 명장들이 다양한 장식과 조각을 남겼으며, ‘보지 말고, 말하지 말고, 듣지 말라’는 세 원숭이 조각으로 유명한 신큐샤가 있습니다.
건물 전체가 수많은 화려한 색채의 조각으로 뒤덮여 하루 종일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히구라시문’이라고도 불리는 ‘요메이몬’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사진

  •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천하의 정권을 장악한 천하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천하의 정권을 장악한 천하인.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신하로 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신하로 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 기요스 동맹을 맺은 오다 노부나가

    기요스 동맹을 맺은 오다 노부나가

  •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5개국을 다스리는 다이묘로 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 1603년 에도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1603년 에도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성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성

  • 에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고쿄가 들어서 있습니다

    에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고쿄가 들어서 있습니다

  • 천하의 향방을 가른 전투로 불리는 ‘세키가하라 전투’

    천하의 향방을 가른 전투로 불리는 ‘세키가하라 전투’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은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은 오사카성

도쿠가와 이에야스 프로필

이름
도쿠가와 이에야스
출생 연도
1542년
사망 연도
1616년
향년
74세
출생지
미카와국(현재의 아이치현)